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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고리닥터 6 8009 1

피해자들은 고문조작의 상징적 장소였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리던 이근안 경감에게 40여일 동안 고문을 당했고,

그해 10월 서울지검 공안부 정형근 검사(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넘겨져 수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 1983년 3월 1심 재판부는 최을호씨에게 사형,

최낙전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항소와 상고는 차례로 기각됐습니다.

최낙교씨는 1982년 12월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기각 처분됐고,

당시 검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유가족은 아직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을호씨는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다 1985년 10월31일 사형,

최낙전씨는 9년을 복역한 뒤에도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된 지 4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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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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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조작된 간첩 활동 증거들

1. 국가 기밀인 마을 초소의 위치를 파악해 북한에 알린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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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 공작금 수령 및 조카 최낙교씨에게 전달

하지만 1000원권 수령 시기와 발급 시기 차이, 그리고 공작금 수령 장소인 비석이 세워진 시기와 사건 시기가 완전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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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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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 사진에 나온 이 조작 사건 경찰 중 한명은 그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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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을호씨 조카인 최낙전씨는 9년 수감 생활 출소 후 아래와 같이 생활하다가 결국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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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팀이 피의자인 이근안씨 인터뷰 요청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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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팀은 이근안과 같이 근무했던 수사관과 다시 인터뷰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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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간첩조작사건인 2차 진도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 인터뷰 

참고로 2차 진도가족간첩단 사건이란 1981년 7월 31일, 국가안전기획부가

진도에서 24년 동안 북한에서 내려온 '박영준(60)'이라는 간첩에게 포섭되어

7명이 간첩활동을 해 왔다고 발표한 사건입니다.

이 일로 박영준의 첫째아들이었던 '박동운(36)'과 친동생인 '박경준(48)'은 간첩 혐의로,

둘째아들 '박근홍(34)'과 아내인 '이수례(57)'는 간첩방조로,

매제인 '허현(43)'은 불고지죄로 각각 구속,

그리고 여동생 박미심(39)과 경준의 아내인 '한등자(41)'는 불고지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됩니다.

그리고 고문으로 인한 거짓 자백으로 조작된 혐의로 최종적으로

박동운은 16년, 박경준은 7년, 이수례는 4년, 박근홍은 3년 6개월, 허현은 1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고,

출소 후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가족들한테 외면당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박동운의 경우에는 아내와 이혼까지 했고,

다른 피해자들의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사건 피해자 중 하나였던

박경준은 1998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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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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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을 처벌하려 해도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없음. 또는 공소시효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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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재일교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 인터뷰

재일교포 간첩조작사건이란 1975년 11월 22일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신임받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 국장이었던 김기춘이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국내에 잠입, 암약해 오던 북괴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하였다.'고

직접 언론에 밝힌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재일동포 10여명을 포함, 21명이 간첩으로 구속, 수감된 후

대부분 중형 혹은 사형을 받아 장기간 구속 수감 후 일본으로 추방되거나 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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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후 취조 보안사 수사관들은 포상금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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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에서 근무한 한 목격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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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교도관이 법정에서 검사 폭행을 증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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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론은 김양기씨에게 징역 7년 판결. 수감 후 재심 심청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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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THEME  
저 고문기술자보다 천억 배, 일억 배 나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후에 총에 맞고 비참하게 디졌지만 반성없는 저 새끼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말년이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Requiem  
박정희에 앞서 이승만부터 거론해야 맞겠죠. 이승만 때 미군정과 손잡고 친일파들을 모두 정부 수립에 참여시키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로 친일파 색히들을 조지려고만 하면 빨갱이로 몰아 사람들을 죽여왔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 이후 정권들까지 그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고 병신이 되고 말로 할 수 없을정도로 수난을 받아왔고 그게 아직까지도 먹히는 인간들이 있다는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목곰  
간첩은 잡아야 하는거지 만드는게 아닌데 더럽게 많이 만들어놓고 들켜도 처벌을 안 받아요.
한통속이니까. 이런 엄청난 간첩있다고 언론대필해주며 공포정치하고 독재하던건데
3명의 독재자는 무고한 국민들을 정권유지를 위해 참 많이도 괴롭혔어 죽였지
설진2  
이제까지 "간첩 잡았다"라며 언론에 발표한 것들 대부분이 조작된 사건이었다는걸 아시는지? (과거사 진상규명위 자료 참조)
대부분의 사건들이 선거와 연관돼 있거나, 정권의 실수를 덮기위한 잇슈제공용으로 국민들을 죽여온거..
그 주역에 안기부, 국정원, 그 밑의 경찰 대공부서가 항상 있었죠.
창설된후 오랫동안 동일한 몰이사건 반복해오다보니 도저히 안돼서, 권한축소 예정 정책발표하면,
"빨갱이는 누가 잡냐?"라고 외치며 날뛰는 사람들 보면.. 참~.. 자기가 빨갱이로 몰려 사형까지 가게 된다면 이해하려나요?
목곰  
이해 안 할듯. 아니면 사고력이 없어서 이해를 못 하거나
저 개.새끼들.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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